• 완월동 사-잇-길

  • 언젠가 송도를 빠져나오는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저 멀리 층층이 집들이 모여 있는 어느 동네.

    송도도 아니고, 남포동도 아니고, 자갈치도 아닌 내 삶의 지도엔 없지만

    “ 분명 있는 저기 ”

  • 완월동을 두 번째 찾아가던 날이었어요. 이날은 특별히 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에서 부소장으로활동 중인 정희씨와 노래짓고 부르는 뮤지션 이내씨와 함께 동행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무슨 생각에 빠져있다가 약속장소를 몇 정거장이나 지나쳐버렸어요. 부랴부랴 만나기로 한 충무동 사거리의 ‘파리바게뜨’ 앞으로 달려가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 “가만있어보자, 파리바게트가 어디지?”

  • 약도

    완월동으로 들어가는 근처에 있지 않을까 싶어, 그리로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건 도무지 ‘파리바게트’같은 건 없을 거 같은 분위기의 길이 이어졌어요. 한참을 헤매다 멀리 두 사람의 모습이 보여서 정신없이 그리로 걸어가며

  • “저 외국에 온 거 같아요”

  • 외국이란 낯선 기운들에 휩쓸려 쉽게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알 수 없다는 감각이 온몸으로 번져오는 경험이잖아요. 순간적으로 이 좁은 충무동 사거리가 시커먼 블랙홀로 변해버린 듯 눈앞이 캄캄하고 식은땀이 삐죽나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두사람과 같이 걸어가면서도 머리 속에서는 내가 ‘길을 왜 찾지 못했을까’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뭔가 납득하기가 어려웠거든요.

  •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완월동으로 들어가는 길이 오로지 ‘하나’라고 생각한 저의 내적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깐 사실은 완월동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나봐요. 그 경험 이후부터 혼자서 완월동을 갈 때면 의식적으로 완월동의 새로운 입구를 발견해봅니다.

  • 그 여러 입구들을 오르내리면서 만난 풍경들이 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아볼게요. 이 편지 또한 수많은 완월동의 입구 중 하나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구경하는 사람이 되거나 불편한 시선들을 마주하게 될까 봐,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 속 두려움이 처음 완월동으로 들어간 그 길만이 ‘입구’라는 이상한 믿음을 만든 거 같아요.

  • 신기할 만큼 완월동은 여러 입구들에 의해서 열려있습니다.

  • 지리적인 영역이 아니더라도 완월동의 입구로 바라보고 기억해야 할 곳이 있습니다. 이름이 지워진 간판들, 전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가게들이 보인다면 그곳이 완월동의 또 다른 입구입니다. 완월동으로 들어가는 곳이 여러 방면으로 열려있다는 것을 발견함과 동시에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출구가 없이 여러개의 입구로만 이루어진 곳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입구
  • 입구와 출구 사이에서만 오랜 시간 존재했던 이야기들, 흔적들이 있습니다.

  • 그런 이야기도 세상엔 있는 겁니다. 좀 불편하고 무거워져도 늘 함께 있다는 것. 이제부터 입구도 아니고 출구도 아닌 그 사-잇- 길을 내어 볼까 합니다. 사이에서 길을 내는 건 누군가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고 만들어나가는 일이잖아요. 이 편지의 수신-발신이 만들어내는 사-잇-길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곳을 발견하게 되는 길이 되길 바래봅니다.

  • 2015년 8월 22일 완월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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