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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사람
업소가 모여 있는 아랫관과 중간, 윗관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주택가로 둘러싸인 산 복도로 마을이 나와요. 행정 명칭으로는 초장로 길과 해돋이로 길입니다. 길을 따라 산복도로 끝까지 올라가면 부산의 영도대교를 중심으로 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펼쳐져요. 산복도로 사이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요. 아직 90년대식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동네 슈퍼, 작은 미용실, 철물점, 세탁소. 모두 시간이 멈추어있는 듯 합니다. 그 시간들이 펼쳐진 길을 어지럽게 따라 걷다가 이곳, 저곳에 붙어져 있는 달방, 셋방, 전월셋방, 빌라 급매가 붙어져 있는 게시판에 눈길을 돌려봅니다. 그러던 순간 놀라운 광경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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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을 처음 본 날 어떤 기록으로도 못한 것이 뒤늦게 생각이 나서 며칠 뒤 완월동을 찾아가서 방 두칸, 부엌 1개, 모든 게시판을 둘러보았지만 완-을-동이라 이름 붙은 저 게시판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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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동이라는 행정 명칭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완월동은 한반도 최초의 유곽 아미산하 유곽이 이전해서 형성된 동네입니다. 일본인들은 이곳에 윤락업소들을 모아 미도리마치라고 이름 불렀습니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에 조선인들이 윤락업소 소유권을 넘겨받고, 미도리마치라는 이름 대신 완월동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해요. 완월동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고, 현재 이 일대의 정식 행정 명칭은 충무동3가, 초장동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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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어디에도 완월동이라는 표지는 없는셈이죠. 완월동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불러 지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남긴 게시판의 완-을-동이라는 명칭은 너무도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무언가를 가르치고, 이름 불릴 때 그 존재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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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월동을 기억하는 사람, 완-을-동이라고 부르는 사람, 아직 완-을-동에 사는 한 사람의 흔적. 그 흔적을 마주하는 일은,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 겹겹이 쌓인 시간, 발자국, 기억들과 마침내 포개어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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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되고 직접 걸어다니면서 눈으로 확인하고 관습과 경험을 통해 알아내야 한다. 여기서 발견되는 것은 모두 강렬하면서도 연약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남겨진 흔적의 기억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 <기호의 제국 p53, 롤랑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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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일 완월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