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
-
완월동으로 답장이 오고 있습니다. 저마다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응답을 건네고 있기에, 도착한 편지는 보낸 이들의 숨결과 호흡이 곳곳에 묻어있어요. 이전까지는 저의 ‘숨’대로 완월동을 만나고 그 ‘숨’을 편지로 썼다면, 이제는 다른 이들의 ‘숨’과 기꺼이 만나야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보내주신 편지들을 읽으면서, 완월동 편지가 각자의 일상에서 성 산업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다시 들여다보기, 말을 건네기, 들어주기, 그 서툰 과정을 함께 해나가고 있는 거 같아요. 보내주신 답장에 대한 응답으로 여섯번째 편지는 완월동으로 온 편지를 함께 읽었던 봄날님의 답장으로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이후 봄날님은 책 <길하나 건너면 벼랑 끝> 저자로 책을 펼쳐내셨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성매매 경험 당사자인 봄날이라고 합니다. 보내주신 답장을 빨리 읽어보고 싶어서 일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왔네요. 한분 한분 보내주신 답장들은 동정심이 없는 문구들로 채워져 있어서 저는 좋았어요. 편지를 펼치면서 살짝 긴장도 했었는데 경험당사자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서 읽는 동안 편안해졌어요. 완월동은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20대를 보냈어요. 완월동이 100년이 넘는 세월과 함께 했다는 것 또한 알게 된 것이 얼마 안 되었어요. 저는 고향이 부산인데요. 10대 때에는 완월동을 몰랐죠. 18살 처음업소 일을 했을 때도 몰랐어요. 대전에서 룸살롱에 일할 때였는데 주인이 말 안 듣는 애들에게 사창가에 팔아넘긴다는 말을 자주했어요. 그때 알았어요. 내가 살던 고향에 악명 높은 사창가가 있다는 것을요. 저는 너무나 무서웠어요. 이 업소를 나가면 갈 곳이 없었던 저는 열심히 시키는 대로 일했어요. 몸이 병이 나는지 어쩌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팔아버린다는 말이 끔찍했고 가끔 사라지는 얘들도 있었거든요. 그러나 팔리지 않아도 내 스스로 집결지로 가야 하는 순간이 왔어요. 그렇게 성매매의 연결고리는 이어져갔어요.
-
당신의 답장을 읽으며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봤어요. 당신이 살고 있는 서동은 예전에는 동상동이라 불렀지요. 그 옆의 금사동에는 많은 공장들이 있었죠. 저도 17살의 나이에 금사동의 한 공장에서 일을 했었지요. 그 동상동에는 유명한 것이 두 가지가 있었어요. 계란 만두하고 금사동의 공장 수에 버금가는 술집이었어요. 17살의 나이에 그 곳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생계라는 치명적인 유혹만이 있었어요.
-
금사동 공장들이 월급날이 되면 그곳은 명절 대목 맞이를 하듯이 사람들이 몰렸어요. 연산동으로 나가기는 멀고 서면으로는 더욱 멀었기에 그곳에서 놀기 좋았죠. 제가 얼마 전에 일이 있어 서면에 가보았어요. 그 많던 공장은 거의 없어지고 술집 또한 많이 사라졌더군요.
저는 완월동을 쳐다보면 아파요. 눈에서는 곧 눈물이 떨어져 내릴 거 같아요. 그 많은 골목들 속에는 정말 출구가 없을까요? 이 골목을 빠져나오면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골목. 벗어날 길이라 생각하고 골목을 빠져나오면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골목. 업소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들과 그 골목은 닮았어요.
-
우리 주변에는 완월동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요. 도시재생 사업의 도마 위에 올라있는 완월동은 자신의 인생에서조차도 주인이 아니었던 언니들에게 그 공간을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공간을 보며 아픔을 직면하던, 외면하던 그 또한 그녀들의 선택으로 남겨두고요.
여러분과 시간이 되면 완월동을 같이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제가 보내는 답장이 길어졌네요. 밤낮의 기온차가 큽니다.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할 계절이에요. 건강하시길 바래요.
-
2015년 11월 봄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