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

  • 추석 연휴에, 해외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고향인 부산을 찾았어요. 완월동 편지의 수신인이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가기 며칠을 앞두고 함께 완월동을 걸었어요. 햇볕이 좋은 오후였어요. 업소 앞에 이모님들이 앉는 의자에 어린 소녀가 이모님과 함께 앉아있는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어요. 이모님과 아이가 함께 앉아서 비둘기 사료를 던져주며 웃고 있었지요. 그 풍경을 햇볕이 따뜻하게 비춰주고 있었고요. 어느 마을의 평범한 모습이지만, 업소 앞이라는 장소성이 교차되면서 여러 마음이 들었습니다.

  • 성매매 집결지 인근에는 그 집결지로 인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상인들이 있고, 마을 주민들이 있지요. 언니들 머리하는 미용실, 네일숍, 병원, 옷가게, 애견숍, 슈퍼마켓 등이 마을 안에서 생태계와 연결되어 있어요. 인권 활동가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건 공생이 아니라 기생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요.

  • 완월동을 이야기를 할 때 그 역사와 여성들, 성산업 구조와 함께 이 마을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 편지는 완월동에서 마주친 주민들,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해요.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에서 활동하시는 선생님과 함께 걸을 때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어요. 마을 주민들에게 모두 인사를 건네시더라고요. 눈을 마주치며 ‘안녕하세요’라고요. 물론 반갑게 다시 인사를 돌려주시는 분들은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인사를 계속하셨어요. 그 인사가 완월동 초행길이었던 저에게는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그렇게 자주 걷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 부광 미용실 길 아저씨
    완월동 중간 길에서 산복도로 마을로 올라가는 작은 골목들 중 8, 90년대 음악이 제법 크게 흘러나오는 골목이 있어요. 골목의 입구에는 80년대식 인테리어를 아직 고수하고 있는 <부광 미용실>이 있어요. 부광 미용실 맞은편엔 주민들 작은 쉼터가 있어서 가끔 쉼터 앞에서 바둑을 두시기도 하셔요. 완월동을 걷다가 이 골목에 잠시 앉아 목을 축이다 보면 잠시나마 8, 9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한 느낌이 들어요. 그곳을 지나갈 때면 매일 만나게 되는 분이 있지요. 일명 뽀글뽀글 파마를 하시고 안경을 쓴 아저씨. 풍기는 겉모습이 워낙 개성이 있으셔서 더 주목하게 되지요. 이 골목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지 않을까 혼자서 상상을 하곤 합니다.

  • 거리의 업주, 남성
    완월동 업소에서 오랫동안 나까이를 하신 이모님들이나, 완월동에서 일 했던 여성들이 완월동을 떠나지 않고, 산복도로 주택가 윗길에 사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 인상만 봐도 예전에 업주나 나까이 일을 했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업소 주변을 다니다 보면 40대, 50대 남성들과 눈이 마주치는 경우들이 종종 있어요. 처음엔 그 눈빛들이 저를 압도해버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어요.

  • 고양이 가족
    산복도로 마을로 올라가면 집과 집 사이에 큰 공터가 제법있어요. 그곳에 고양이들이 가족을 이루어 빈터에서 공동거주를 하고 있었어요. 세가족이 함께 살고 있더라고요. 엄마, 아빠, 아이들 이렇게 오붓하게.

  • 가로공원 앞 주민들의 쉼터
    오랜 역사를 품고 있고, 일제 시기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매일 인근 주민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서 마당에 앉아계세요. 완월동에 많은분들이 반려견과와 함께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가로공원 바로 뒤편이 집결지가 모여 있는 중간길(관)이거든요. 완월동은 주민들이 살아가는 마을이자 집결지로 오랜 시간 공존해온 거죠. 완월동을 주로 오전과 오후에 걷곤하는데 조용한 편이고, 집결지가 홀로 존재하는 느낌보다는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는 느낌이 강해요. 마을의 이곳, 저곳엔 오랜 시간 집결지로서의 잔여들이 조용히 숨죽여 있기도 하고요. 용산의 성매매 집결지,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장소였던 <막달레나의 집>에서 그 시간을 기록한 책 <막달레나 용감한 여성의 꿈 집결지>를 읽다 보면 여성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집결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나와요. 업주, 이모님들, 장사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곳의 생태계를 돌보고 있어요.

  • 완월동을 천천히 걷다 보면 겹겹이 쌓이고 교차 되어 있는 장소와 존재를 만나는 길이라고 느껴요. 낯설지만 익숙하고, 불편하지만 존재하는

  • 만나도
    아직
    만나지 못한 .

  • 2015년 10월 14일 완월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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